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각종 개념과 용어
1. 재협상과 추가협상의 차이점은
'재협상'과 '추가협상'이란 용어는 국제법 등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는 않다. 현재 국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의미로 풀어본다면 재협상은 이미 타결, 서명이 이뤄진 협정문을 백지화하고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가리킨다. 반면 추가협상은 기존 협정문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으면서 부속서 등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2007년 6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에서 두 달 전 타결된 협정문 본문을 7군데 고친 사례가 있다는 점을 미뤄볼 때 반드시 '협정본문 수정불가'라는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2. 재협상 사례 없나
쇠고기 재협상에 양국 정부가 난색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비교적 빈번하게 상대국에 재협상을 요구한 전례가 있다. 미국은 1992년 타결된 북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이후 멕시코의 노동·환경 규제완화 우려가 제기되자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멕시코와 재협상에 나서 노동·환경 분야 규정을 강화하는 부속협정을 관철시켰다. 2006년에도 페루정부와 FTA협상 타결 후 서명한 뒤 페루의회가 비준까지 마쳤으나 2007년 노동·환경·의약품 분야 등 규정을 강화하는 신통상정책이 만들어지자 페루와 재협상을 벌였다. 콜롬비아와도 마찬가지로 재협상이 있었다. 1998년 11월 한·일 신어업협정도 타결된 이후 우리 측 실무자 실수로 '쌍끌이 조업권'과 '복어조업권'이 누락된 사실이 드러나자 일본 측에 요구해 다시 협상이 이뤄졌다.
3. 재협상하면 통상마찰이 발생하나
그런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1995년 WTO체제 출범 이후 일방적 무역보복조치는 금지돼 있다. 무역분쟁에 관한 WTO의 협정서는 "일방적이고 정당화되지 않은 보복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부당하게 이익이 침해됐다고 판단될 경우 WTO의 분쟁해결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유럽연합(EU)가 성장호르몬 주입을 이유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지만 미국은 WTO에 제소하는 데 그쳤다. 2000~2001년 한·중 마늘분쟁 때 중국이 한국산 휴대전화 등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했지만 당시 중국은 WTO미가입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이 쇠고기 재협상에 나설 경우 미국의 한·미 FTA 자동차 재협상 주장이 힘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쇠고기 재협상을 하지 않는다고 FTA재협상론이 사그라질 가능성도 없다. 미국은 자국에 필요하다면 상대국이 의회비준까지 한 협상에 대해서도 재협상 요구에 나선 적이 있기 때문이다.
4. 양해각서와 공동성명은 뭔가
양해각서는 일종의 외교문서다. 원래는 조약이나 정식계약의 체결에 앞서 국가간 교섭결과에 따라 서로 양해된 사항을 확인·기록하는 문서를 가리킨다. 공식적으로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조약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지금은 협정이나 조약과는 상관없는 내용을 담는 경우도 있다. 공동성명은 양국 최고책임자의 회담내용이나 합의사항 등을 기록한 외교문서로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성명에 담긴 합의사항이나 정책결정은 도의적 구속력을 가지는 정치적 약속인 만큼 통례적으로 준수하는 게 외교관행이다.
5. 민간자율규제와 자율규제협정은
자율규제협정(VRA)은 해당상품의 수출업자들이 일정한 가이드 라인을 설정, 수출물량을 자율적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통상마찰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여왔다. 수입쿼터를 정해 물량을 제한하거나 수입관세를 인상하는 본격적인 수입제한 조치의 시행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로 쓰여왔다. 대표적인 것이 1981년 미국과 일본 간에 맺은 자동차 수출자율규제 협정이다. 미국은 또 자국의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1980년대 철강 자율규제협정을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과 체결하는 등 사실상 수입물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고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지난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철강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자율규제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자율규제협정은 WTO 출범 이후 자유무역을 저해하는 사례로 금지됐다. 현재 쇠고기의 민간자율규제를 정부가 보증하는 것을 양국정부가 꺼리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민간자율규제는 자율규제협정과 유사하지만 정부 간에 자율규제를 보증하는 협정 없이 이뤄지고 있는 말 그대로 민간차원의 규제를 가리킨다.
6. WTO와 위생검역협정(SPS)은
세계무역기구(WTO)는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를 대신하여 세계무역질서를 세우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의 이행을 감시하는 기구로 1995년 1월 출범했다. 국가 간 경제분쟁에 대한 판결권과 그 판결의 강제집행권이 있으며 국가 간 분쟁이나 마찰을 조정한다. 또 세계무역분쟁 조정, 관세인하 요구, 반덤핑 규제 등 준사법적 권한과 구속력을 행사한다. 위생검역협정(SPS)은 WTO출범과 함께 발효된 협정으로 식품첨가물, 오염물질, 병원성 미생물, 독소 등 4개 분야의 기준치와 규격을 정하고 이를 통과할 경우 식품과 동식물의 교역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각국이 농축산물에 대한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위생검역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자유무역에 저해된다는 취지에서 만든 협정이다. 이 SPS 5조7항에는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할 경우에도 국민건강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을 경우 수입을 잠정중단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지난 4월 한·미 양국이 합의한 수입위생조건은 광우병이 발생해도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수입하도록 돼 있었고 이 조항이 문제가 되자 한·미 양국이 SPS조항을 들어 수입위생조건을 보완했다.
7.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이란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이란 미국 농무부(USDA)가 각 나라와 맺은 수입위생조건에 맞는 쇠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작업장을 일정 조건에 부합하도록 감독하는 체계를 말한다. 미국에서 협상 중인 우리 정부의 대표단은 미국 정부가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는 작업장에 '30개월 미만'이라는 조건이 포함되고, 강제성을 갖는 EV 프로그램을 적용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각 나라에 맞는 20여 가지의 EV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국은 지난 4월 미국과 합의한 새 수입위생조건에서 수입 가능한 쇠고기 범위를 '미국 연방 육류검사법에 기술된 소의 모든 식용부위와 제품'으로 규정한 바 있어 한국행 EV 프로그램은 필요없게 됐다. 일본은 지난 2003년 9월 미국을 경유한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기 위해 자국산 쇠고기와 수입 쇠고기를 분별 유통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하고, 이를 지키는 업체의 쇠고기만 일본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하는 EV 프로그램을 시행한 바 있다.
8. 가축전염병예방법이 왜 논란이 되나
쇠고기 파동이 거세지면서 그 해법으로 '가축전염병예방법(이하 가축법) 개정'문제를 통합민주당이 제기하고 있다. 가축법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의 모법(母法)이므로 가축법을 개정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을 명문화하면 수입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모법에 배치되는 고시 내용을 바꾸기 위해 정부로서는 재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국내법으로 국제법을 제한하면 통상마찰 요인이 될 우려가 매우 크고 국가 신인도도 떨어질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9. 국제수역사무국(OIE)이란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국제적 차원에서 동물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해 1924년 창립된 기구다. 1995년 WTO 설립과 동시에 '위생식물검역조치 적용에 관한 협정'이 발효되면서 동물검역에 관한 기준을 정하는 국제기관으로 공인됐다. 현재 172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우리나라는 1953년 가입했다. 하지만 OIE의 기준이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권고나 지침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OIE가 지난 2007년 5월 미국을 광우병위험통제국가로 지정했지만 일본, 대만 등 수입국들은 각기 자국 내에서 마련한 기준을 통해 수입협상에 임하고 있다.
10. 다른 나라들의 쇠고기 협상상황은
현재 미국이 수입위생조건 개정을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인 일본과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대만은 '뼈를 제외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을 수입 허용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6년 3월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적용되는 기존의 수입위생조건과 같은 조건이다. 일본은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 수출업체들에 적용되는 EV 프로그램을 통해 월령확인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개체식별 기록이 있어야 하고, 그 기록에는 소의 실제 출생일이 표기돼야 하며 소의 이력을 추적하기에 충분해야 한다. 이력추적이 안 될 경우 근육의 성숙도를 검사해 17개월 이하 등급을 받은 경우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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