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박사.
"씨없는 수박 맹든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도 이승만의 저주인건가. 그걸 우 박사가 한국에 들고 온거다. 뭔 넘의 "씨없는 수박 박사"...
우범선의 증언에 따르면 억울한 면도 있다는데 뭐 어쨌든. 우범선은 우장춘의 나이 5살에 대한제국이 보낸 자객에 살해된다. 그리고, 무슨 동화책 속의 주인공마냥 조선인 우장춘은 고아원생들의 무지막지한 이지매 공격에 시달린다.
나중에 일탈행위를 하기 마련인데 우장춘은 그 반대였다. 그는 '기어코 훌륭한 사람이 되서 너희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것도 그냥 대학이 아니라 동경제국대학을. 명문대 간건 장춘이 대단해서였지만 아무튼.
일본 제국주의과 우장춘의 복수심
도쿄제국대학 농학실과을 졸업한 장춘, 일본 농림성에 취업해 혁혁한 업적을 쌓으며 승승장구한다. 근데 1937년 어느날 갑자기 해임. 왜? 일본 이름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제로 그는 결혼하려고 일본인의 양자가 돼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라는 일본 이름을 얻었다. 근데 정작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 논문과 공문 기록에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한국 성인 "우"를 집어 넣었다.
우장춘에게 일본은 혹독한 굶주림과 차별과 폭력의 나라였다. 일본에서 이민자가 얻을 수 없는 엄청 높은 지위를 얻긴 했으나 그건 순전히 장춘이 혼자 잘나서 그렇게 된 거고. 자신의 가족을 그토록 짓밟았던 제국주의에 미쳐 날뛰는 나라, 일본은 우장춘에게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할 적국일 뿐이었다.
괴롭게도 조선은 우장춘을 역적의 아들로 낙인 찍었으나, 여전히 조선은 그의 뿌리이자 (자신처럼) 일본에게 짓밟힌 약자였다.
육종학계 최고 권위자라는 명예를 간직한 채 일본 이민자 역사에 빛나는 태양으로 남을 수 있었다. "같은 민족"이라는 미끼로, 영입하고자 했다. 우장춘의 가족에게 "이적료"로 1백만엔을 보낼 정도로 열성이었다. 당시 1백만엔이면 '남편이 죽었어요 10억을 받았어요' 수준의 엄청난 돈.
난 조선에서 죄인이겠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조선이 먼저 "어서오쎄요"라고 걸보고 무척 감격했던게 분명했다. 그리고 당시(1950년) 한국 전쟁이 한참이었던 부산에 와서 그 나이에 군복무까지 했다. 당시 높으신 양반들은 군면제시켜 주려고 했는데 우장춘은 싫다고 했단다. 허허...
근데 소장이면 뭐하니. 전쟁으로 쑥대밭된 나라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입을 옷도 없어서 우장춘 소장은 행사장에 누더기 외투에 고무신 끌고 나가셨단다.)
그 업적의 핵심은 바로, 우량 종자 개발. 일본에서 종자를 들여와 일본식 기술로 농사를 지어야 했는데, 일본이 패망한 뒤로는 그게 불가능해 진 거다. 식량 작물은 키워 놓으면 지가 알아서 씨를 틔워 번식하는게 아닌 모양이었다. (난 영농기술에 잘 모르니 원) 인공적으로 종자를 개발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있었던 모양. 우장춘은 가장 먼저 우량 종자 개발에 주력, 최단시간 내에 배추, 무, 고추, 오이, 양배추, 양파, 토마토, 수박, 참외 등에 걸쳐 20여 품종에서 종자를 확보한다. (그 외에도 한해 두번 수확하는 벼 품종 개발 등 무수히 많단다) 뿐만 아니라 우장춘이 손을 댄 우량 종자들은 외국 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품질이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최우수 과일 품종 "제주 감귤." 이 엄청난 작물의 종자와 재배 기술을 창작해 낸 것도 모자라, 우장춘은 이걸 제주와 남해안 일대에 생산지를 구축, 제주 감귤 산업을 일으켜 세우셨다.
강원도 감자 있잖수. 이거이 특정 바이러스에 너무 취약해 한번 창궐하면 전멸을 하곤 했단다. 그때마다 강원도민들의 상당수는 굶어죽는 거였고. 이걸 종자를 변형시켜 면역을 가진 강력한 작물로 탈바꿈 시켰다. 그리고 페튜니아를 화초로 가꿀 수 있도록 개발해서 원예 산업을 일으켜 세웠고... 이건 일본에서도 깜짝 놀랐던 엄청난 업적이라는데 내가 잘 몰라서 그냥 패스.
우장춘 박사는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해 주신게 아니라 먹는 걸로 경제와 산업을 창출하는 기반까지 닦아 주신... 그 당시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천사였던 거다.
십이지장 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그 때 한참 실험 중이던 일식이수(一植二收)의 벼를 비닐 봉투에 넣어 링거병이랑 같이 걸어 놓고 관찰할 정도였다. 근데 이승만과 그의 떨거지들은 우장춘을 우습게 여겼다. 왜냐, 우리말을 잘 못했거든. 우장춘 박사는 사실 한글에 도통한 분이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수 영어 읽기 듣기 쓰기 다 잘하는데 말하기만 젬병인 사람. 우장춘이 그랬다. 다 잘하는데 한글을 구사하는 것만 못했다. 아예 공개석상에서 일본말만 지껄일 줄 알면서 무슨 애국을 하겠다며 망신을 준 정치인도 있었다.
이 때부터 그 잘난 대한민국의 처절한 과학자/엔지니어 냉대 전통이 시작된 거라는 거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작고하셨을 때도, 딸이 결혼을 했을 때도 우장춘은 일본으로 건너가지 못했다. 이승만 정권이 출국 금지를 시켰걸랑. 그 소릴 들은 이승만 정권은 '사상에 문제가 있네'라며 그를 출국 금지시켜 버렸다.
어머니의 죽음, 딸의 결혼도 함께 하지 못한 우장춘. 아들로서 아비로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이었겟지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시키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국이 날 인정했구만... 근데 좀 일찍 좀 주지..."
이승만 정권은 우장춘을 철저히 이용만 해 먹었다. 그들은 우장춘의 업적을 기록에 남기는 것조차 소홀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구국의 영웅이자 만능 천재 과학자 우장춘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거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서점에서 책을 찾아도, 우장춘에 관한 콘텐트는 코흘리개 애들 교과서 한귀퉁이에 실릴 정도의 분량 밖에 나오지 않는다.
친일파 의원들이 득실득실하던 이승만 정권에서 단지 '한국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배척당한
우장춘 박사님이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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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아 시발놈 명박아.......................................
이거 좀 봐라...
세상에 태어나 출신보다 중요한건 어떤일을 했느냐라고 생각한다...
넌 일본땅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한국에 왔으면
제대로 할일을 했으면 우리가 니 출신따졌겠니
비록 우장춘박사는 친일파의 자식이었고 일본피도 섞였으며, 비록 한국말도 유창하시진 않으셨지만
한국을 조국이라 여기며 조국을위해 한평생 일하셨다.
지금 현재 우장춘 박사 출신욕하는 사람이 있더냐??????
명박이 넌 한국의 수치다 ㅉㅉㅉ
....많은분들이 모르시는거같아서 아침에 올렸다가 다시 퍼서 데려왔어요...ㅠㅠ
소드인들이여, 배운여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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