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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머리가 띵 했다. 1956년 5월, 마포경찰서 사찰과 형사(오늘의 정보과)앞에서 나는 떨고 있었다.
신익희 후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호남 유세를 가던 중 야간열차에서 급서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독살됐다는 것이다.
시신이 서울에 도착하자 수많은 대학생들이 운구차를 따랐다. 고인의 집은 경무대(청와대) 근처 효자동이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군중들이 경무대로 가자고 외쳤다. 독재에 대한 울분이 가슴속에서 끓고 있었다. 민주지도자를 잃었다는 분노였다.
경무대 앞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총도 쐈다. 이것이 이른바 <5·5 경무대 앞 소요사건>이다. 지금의 광화문종합청사(당시 경찰무기고)앞에서 나는 CIC(당시 특무대. 현재 기무사)에 체포됐다.
특무대에서는 간첩이 갇혀있는 지하 감방도 봤다. 홀랑 벗겨진 간첩 용의자들이 신음을 하고 있었다.
특무대 본부(효자동에 있었음)에서 며칠 얻어맞고 시경찰국으로 옮겼고 다음에는 마포서로 이송됐다. 거기서 조사를 받았다.
대학1년생인 나는 누구의 지령을 받았느냐 돈은 얼마나 받았느냐는 질문과 함께 수도 없이 뺨은 맞았고 어금니가 흔들렸다. 보름 만에 석방됐다. 석방되던 날. 경찰서장이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네놈들이 아무리 독재타도를 외쳐대도 이 박사 자유당정권 까딱없다. 정신 차려 이놈들아. 경찰이 괜히 있는 줄 아냐”
경찰 사찰과는 일제 때 악명 높았던 고등계의 후예다. 오늘의 정보과다. 요즘 다시 각광을 받는다. 왜 이 말을 새삼스럽게 끄집어내는가. 한번 꾼 악몽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전두환 시절, 한번 찍힌 사람들은 사는 게 고통이었다. 작가의 글도 한 줄 마음에 안 들면 호출이었다. 겁이 났다. 안부전화라고 하는데도 등줄기가 오싹했다. 중앙일보의 한수산 연재소설 필화사건도 그거다. 죄도 없이 좋은 시인 박정만이 그 일로 죽었다.
보안사 윤석양 일병의 감시자 명단 폭로사건도 정치사찰이었다. 마포경찰서에서 매 맞던 생각이 났다. 특무대 지하실 생각이 났다. 얌전하게 살자. 보기 좋은 글만 썼다. 참으로 치사한 삶이었다.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우리 말단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다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겁니다. 우리도 정말 하기 싫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보과 형사들이 하는 소리다. 하라는데 별 수 있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이해는 하지만 동의는 못한다.
인간은 매사를 자기중심으로 해석한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한다. 나쁜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현명하다. 그래야 불행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이승만의 비극, 박정희의 비극. 전두환의 비극도 모두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가 당한 비극이다.
세기의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동기는 순수하다. 모두가 나라 잘 되고 백성 잘 살게 하고 자기 이름 역사에 남기고 싶어서다. 이광수 최남선도 친일이 민족을 위해서라고 했다.
처음에 잘 나가다가 자꾸만 장애가 생긴다. 왜 이럴까. 반성도 한다. 그건 잠시다. 남의 탓을 하게 된다. 나는 잘 하는데 방해세력 때문에 안 된다고 여긴다.
저것들만 없으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확신이 된다. 밀고 나가면 된다. 나라를 위하여, 사랑하는 국민을 위하여, 내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기기 위해서 밀고 나가자.
당연히 무리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감시와 협박. 폭력이 날 뛴다. 급기야 살육이다. 4·19, 5·18광주민주항쟁,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등 등.
그 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독재자는 생기는 것이다. 마치 수레가 언덕에서 굴러 내려가듯 독재자도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독재자들은 똑똑한 사람이다. 바보는 독재를 못한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존심과 우월감이 대단하다. 논리적이다. 신념을 접지 않는다. 반대하는 인간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반대만 하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설득해 본다. 안 된다. 어쩌지. 할 수 없다. 불도저처럼 밀고 가는 것이다.
반발이 온다. 후퇴할 수 없다. 어쩐다. 역시 밀고 나가야지. 지식인들이 문제다. 행동은 못하면서 입만 살아 있는 지식인들. 겁을 줘야지.
경험처럼 좋은 스승은 없다. 자유당 때도 지식인들은 허약했다. 유신독재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은 어떤가. 차라리 웃자.
당근과 채찍은 언론을 위해서 만든 말이 아닌가. 정치언론인과 정치교수들은 쌔고 쌨다. 소리 한번 지르면 자라목처럼 들어간다. 간도 쓸게도 다 빼 놓고 아첨한다.
드디어 정보 공안 정치가 재등장했다고 걱정들을 한다. 경찰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정말 아닌가.
“왜 정보과 형사들이 <대운하반대>교수들을 찾아 갔느냐.”
“평상시 치안활동의 일환이다.”
“왜 강금실 위원장을 밀착해 따라 붙었느냐.”
“박근혜 대표피습 이후 당연히 해야하는 주요인사에 대한 업무다.”
“왜 정보과 형사인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사고가 나면 그 역시 경찰 책임 아닌 가.”
“왜 정보과 형사인가”
“......(침 묵...”
“왜 정보과 형사인가”
“......................”
대답이 궁했겠지. 그럴 때 대답할 말이 있다. 위에서 하라고 하는데 어쩝니까.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이게 정답이지만 그런 바보는 없다. 왜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말단경찰의 목구멍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 언론은 뭘 하는가. 뭘 하긴. 놀고 있지. 이렇게 말하면 펄펄 뛸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고군분투한다. 언론이 금과옥조로 강조하는 국민의 알 권리는 공안정국으로의 회귀와는 상관이 없는가. 조중동은 대답해야 한다. 지금 조중동은 언론의 길을 가고 있는가. 엉망이 된 주정꾼처럼 비틀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는 대학교수 모임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들을 정보과 형사들과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와 왜 참여하고 어떻게 활동할 것이냐를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이 정상적인 업무라고 생각하는가.
등록금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에 집회인원보다 배가 넘는 경찰병력과 체포조 까지 투입했다고 한겨레는 보도한다. 다른 신문도 보도했나.
1970년대 유신치하나 5공화국 시대인 80년대에 보던 모습이다. 이제 다시 그 시절도 회귀하는가. 그 시절을 국민들이 그리워하는가. 최루탄 맞은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멘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국민은 없다고 믿는다. 어느 정당이라도 어느 정치인이라도 대한민국의 흙은 밟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나라를 사랑할 것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이 나라를 사랑하는 정당이라고 믿는다. 총선에 출마한 그 많은 정치인들도 누구보다 이 나라를 사랑하리라고 믿는다.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도 어느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리라고 믿는다.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념은 이 나라의 경제를 반드시 기적처럼 일으킬 것으로 믿는 국민이 많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한반도대운하>도 이 나라를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왜 반대가 그렇게 많고 2500명이 넘는 대학교수들이 한 목소리로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는가.
그렇다면 공개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한반도대운하는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밀실에서 한반도운하를 추진한다든지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정보과 형사들이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유치한 행동임은 물론이고 대운하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는 효과밖에 얻을것이 없다.
정보기관의 협박이나 감시로 반대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맞다. 그런 시도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난 수십 년 간의 역사에서 입증이 되었다.
경찰이나 정보기관의 힘을 빌리는 행위가 더욱 큰 반발을 불러오고 혹시나 하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엄청난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 나라는 탄탄한 민주화의 요새 속에 튼튼히 자리잡고 있다. 만의 하나 20년 전에 공안정국이나 정보정치 시대로 되돌리려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비참한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착각을 잘 하는 동물이 정치인이다. 착각이 불러 올 결과 역시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 것은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참모가 브레이크다. 참 말하기 힘들 것이다. “해 봤어! 가 봤어!”
그러나 해야 한다.
그들이 하지 않으면 국민이 하게 된다. 그 손실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때문에 되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는 세워야 한다.
2008년 4월 1일
이기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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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4-02 0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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