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물값 14만원' 괴담, 본질은 '괴담' 아니다
한동안 '상수도 민영화되면 수돗물 사용가 하루 14만원'이라는 과장된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 경찰이 이를 '괴담'으로 규정하고 전기통신기본법 47조에 근거해 조사하겠다는 이야기까지 한 적이 있어 부각된 소문이다.
물론, 과장된 소문이지만 그 이면에 숨은 '진의'는 무시해서는 안된다. '수돗물 사용가 하루 14만원'의 근거는 '상수도 민영화'이며, 1인당 평균 하루 물 사용량 285리터를 리터당 500원으로 계산했을 때, 14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 것이다.
소문의 본질은 '상수도 민영화'를 계기로 수돗물 가격이 만만치 않게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과장'에 대해 경찰이 전기통신기본법 47조를 바탕으로 조사를 벌이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 그래서 황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상수도 민영화'를 계기로 최악의 사태를 맞이한 사례도 우리로서는 주시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상수도 민영화' 담긴 '물산업지원법' 입법 예고
오는 22일에는 환경부가 '물산업지원법'을 입법 예고한다. '물산업지원법'에는 '상수도 민영화'의 골자도 담겨있다고 한다. 수도시설의 소유권은 국가와 지자체가 그대로 갖지만, '관리권'에 대한 법인을 지자체가 설립해 보유하면서 민간 사업자가 '지분투자' 등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분 참여 비율 제한'을 명시하지 않아 민간업자가 100% 소유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외국 기업의 참여 제한 규정도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문성을 갖춘 사업자가 관리하면 상수도 누수율(운반 과정에서 밖으로 빠져 흘러나가는 물의 비율)이 낮아지면서 인력 구조조정과 정보화 시스템 도입 등으로 인해 물값이 오히려 내려갈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축의 뉘앙스를 흘리고 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문제와 마찬가지로 상수도 민영화의 논리는 '누적 적자'에 있다. 2006년 말 기준으로 1조 4,888억원이며, 각각 평균 1톤당 2,446원과 1820원이라는 독일이나 영국에 비해 서울시의 경우 1톤당 516원으로써 생산원가 680원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 근거도 있다는 점에서 '상수도 민영화'의 논리는 헛점이 있다. 서울시의 톤당 평균 수도요금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경영 변화로써 수돗물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서 오히려 흑자를 보고 있으며, 강원도 영월은 1톤당 1071원을 받는데 원가의 4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상수도 민영화'는 제법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사안이었다. 물 시장은 이미 '블루 골드' 시장으로 자리잡았고, 누적 적자도 훌륭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민영화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도 완성된다. '블루 골드'를 보고 덤벼드는 외국 기업의 장삿속에 '물'이라는 소중한 공공재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은 엄청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미국과 EU(유럽연합)가 한국과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물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는 대목을 기억해야 한다.
'물 시장 개방' 후 빈번한 폭동 사례
'상수도 민영화' 이후 치솟는 수돗물 가격에 '폭동'까지 일어났던 대표적인 사례는 볼리비아의 '코차밤바'를 예로 들 수 있다.
1999년에, 볼리비아 정부는 상수도를 딕 체니 부통령의 벡텔사에 팔아넘겼다. 그 이후, 수돗물 가격은 엄청나게 올랐다고 한다. 아이들이 장난을 하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어놓으면 큰일난다는 인식 아래 수도꼭지를 밧줄로 꽁꽁 묶어뒀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도 한 달 치 수돗물 가격이 월급(평균 100달러)의 20%(평균 20달러)에 육박했다고 한다.
볼리비아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1993년에 각종 공공부문과 국영기업 민영화에 나선 아르헨티나 정부는 '투쿠만 주'의 상·하수도 시설을 '비방디 바이런먼트'라는 업체와 계약해 민영화했던 적이 있었다.
물 서비스는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수도요금 청구서에는 약 104%가 인상된 수치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별다른 투자 없이 가격만 올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영국 철도산업에서도 그랬듯이, 민영화로 서비스가 더 나아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가만히 돈만 받아도 수익이 저절로 나오는 알짜 부문에 대해 시설 투자에 나설 기업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누구나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행동'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투쿠만 주' 주민들은 주 정부에 계약 파기를 요구하면서 80%의 주민들이 '수도요금 납부' 거부까지 나선 끝에 계약이 파기됐다고 한다.
특히나 정세 불안까지 맞물렸던 볼리비아에서는 2000년 4월 8일에 노동자·농민 주도로 폭동이 일어나 진압부대와 충돌, 결국 2명이 숨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볼리비아 정부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노동자와 농민을 자극해 시위가 더 격화됐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모드 발로·토니 클라크의 <블루골드>라는 책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루과이와 미국으로까지 번졌다고 한다. 물을 '블루골드'로 인식하면서, 민영화된 수도시설을 집중적으로 노려 계약과 더불어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비방디·수에즈·템스워터 등의 업체가 한국이라고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눈치없음'과 '사회성 결핍'
각종 공공부문 민영화는 IMF 체제 이후부터 가속화된 것이기에, 모든 책임이 이명박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눈치'에 있다. '안' 보는 것인지, '못' 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극심한 경기불황과 양극화 현상 속에서 이에 대한 눈치를 살펴보는 기색도 없이 분야별로 무차별적으로 민영화를 밀어붙이다 보니 민심이 이반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논리에는 전반적으로 '사회성'이 결핍돼 있다. 사회는 신분과 재산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두루 모여사는 공간이다. 무슨 의미일까? 그런 구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며, 공공재에 대해서는 차별된 서비스를 받아선 안된다는 의미다.
이 '사회성' 결핍을 가장 확실하게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학교 자율화 방안'이다. 학교의 학급은, 하나의 작은 사회이자 미성년자들이 사회를 익혀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과서 공부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우열반'이니 하는 무차별적인 '효율'과 '부'의 논리를 내세워 이 '사회성 결핍'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교육정책마저도 이런 식으로 대처하니, 의료·수도 등의 공공재에 있어서도 꺼리낌없이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돈'과 '효율'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고 공공재에 대한 동등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더불어 사는 곳이 바로 사회를 말한다.
이런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공공재를 외국기업의 잇속 사냥에 노출시키니 국민적 반발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국민이 이명박 정부에 숙제를 내준다면, 내줄 숙제는 다른 것이 아니다. 타인과 그 정황을 살펴볼 수 있는 '눈치'와 초등학생부터 배우는 '사회성'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에 있어 기본적인 것조차도 숙제를 내줘야 하는 이명박 정부, 그러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도 끝내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고 '눈 가리고 아웅'과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것일 듯하다.
이명박 정부, '촛불' 속에 숨은 우리 국민들의 연대의식과 그 사회성을 제대로 살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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