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스크랩] 82Cook에 올라온 동아투위 문영희씨의 글 (이 글읽으면 힘이 절로날것이오)

멋진 결혼을 하자 2008. 6. 25. 22:22

원제: 여러분이 자랑스럽니다.

 

먼저 저희 ‘동아투위’라는 언론인 단체가 평생 풀지 못한 숙제를 여러분 주부들이 곧 풀어주실 것 같은 기대감으로 인사를 올립니다. 여러분은 정말 장하십니다. 사이트 이름이 주는 이미지라면 ‘요리에 관심이 많은 주부들‘인데도 어쩌다 여러분이 언론권력과의 투쟁 중심에 서게 되셨는지는 잘 알지는 못하나 이는 역사의 법칙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투쟁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시고 초심대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저희 동아투위에 대해 잠시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좀 길더라도 현대사의 일부를 옮기는 일이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동아일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1975년 3월 17일, 쫓겨난 언론인 단체입니다. 그 때는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무렵,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는 유신독재를 반대하며 날이면 날마다 반유신 데모를 했습니다. 학생들은 데모했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위반죄로 감옥으로 끌려가는데 신문은 이를 보도할 수 없었습니다. 긴급조치는 이런 보도를 금지하는 박정희 명령이었죠. 저희 젊은 기자들은 밤마다 회사 근처 술집에서 언론인의 현실을 통탄하며 ‘이대로는 안 된다. 사고를 치자. 세상을 시끄럽게 해야 국민이 각성할 것이다’라며 술주정이나 부렸습니다.

이보다 앞서 1971년 3월 어느 날, 서울대 단과대학 학생회장단 10여 명이 갑자기 동아일보 사옥 앞에 나타나 ‘민족 앞에 지은 죄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라는 펼침 막을 걸고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젊은 기자들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유신체제는 꼭 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힘이 없다. 데모 기사를 써도 간부들이 빼버린다. 더구나 무뇌한 동료들(그 때는 생각 없는 동료라고 말했죠)도 문제다.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틈만 나면 언론 자유에 관한 성명서를 작성, 회사 안에서 발표했답니다. 그러던 중, 언론노동조합도 만들어 보았지만 중앙정보부와 사주 김상만의 방해로 실패하고 20명 가까운 동지들이 해직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 동아일보 안의 젊은 언론인들은  마침내 1974년 10월 24일, 세계 언론사에 길이 남을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전격적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이 선언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론자유’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언론자유는 많은 자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법으로 제약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자유언론(The Free Press)은 천부적 자유를 강조하는 개념입니다. 법으로도 제약할 수 없는 자유라는 뜻이죠. 요즘 많은 언론 학자들도 이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 선언의 발표 이후 우리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당시 동아일보의 간행물인 신문, 방송(DBS), 신동아. 여성동아를 제작했습니다. 그 해 연말, 각 매체의 단골 광고주들이 하나씩 둘씩 광고 게재 중단의 뜻을 알려 왔습니다. 이것이 1975년 박정희에 의한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국민들은 ‘격려광고’로 이에 맞섰지만 동아일보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젊은 언론인 150여 명을 해고시킴으로써 박정희와 야합한 가운데 자유언론 시대를 마감했습니다.

지금 동아일보에는 나이도 젊고 ‘자유언론 정신’에 투철한 언론인이 거의 없습니다. 일부 있었다지만 싸울 생각은 않고 스스로 신문사를 떠난다고 듣고 있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듯 말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지금은 젊은 기자들에게 바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가난’을 ‘무능’으로 아는 세대입니다. 어찌 가난이 무능이리요? 더구나 언론인이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람은 ‘참 나쁜 신문‘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당시 조선일보에서도 젊은 기자들의 저항이 있었답니다. 그들 30여 명도 우리와 함께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자유언론 운동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들 동아투위(www.donga1024.or.kr)는 평균 연령이 64세입니다. 지난 33년 간 조중동의 패악을 고발하며 정도 언론으로의 복귀를 촉구했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다만, 우리는 한겨레신문의 창간을 비롯, 수많은 젊은 언론인들의 가슴 속에 ‘자유언론 정신’을 심어주었다는 데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해 여러분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여러분의 ‘타도 조중동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민변 토론회에 참석한 한 아주머니가 하신 “우리는 조중동을 알지만 조중동은 우리를 모른다’는 말에 정말 감동 먹었습니다. 주부의 힘으로 조중동이라는 사탄이 쓰러지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운동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82쿡닷컴’ 만세!

<이 글은 동아투위 문영희가 개인적으로 쓴 것입니다>

출처 : 쌍코 카페
글쓴이 : ⓧ5월달안에 취업대박&훈남남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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