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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승만 비참한 최후사진 ....^_^;

멋진 결혼을 하자 2008. 7. 4. 12:30

4.19혁명의 초기 마산에서의 시위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름

시신은 눈에 최루탄이 깊게 박히고, 시신에 바위를 매단 채

바다밑에 감춰진지 27일만에 떠올랐고 이는 4.19로 폭발한다

1960년 4월1일 시신이 인양된 마산 앞바다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쫒겨나가는 이승만 차량

이제 권력 빼앗기고 사택인 이화장에 숨어있다

국민에 의해 재산은 숫가락 정도만 허락되었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가서 교포집에서 무상거주함

남산에 있던 이승만 동상

얼른 내려와

하와이로 쫒겨난지 2년 후인 1962년 병든 사진, 1965년에 죽었다

1959년 10월 은혼식(결혼25주년) 때의 이승만 부부와 양아들

양 쪽은 이기붕 부통령 부부. 이승만이 방귀 뀌니까 '시원하시겠습니다, 각하'

부통령 이기붕은 국민에 의해 사임당하고 청와대에 숨어있다가

현역 소위인 장남이 권총으로 가족을 몰살하여 시체차량이 청와대를 쫒겨난다

이미 주인 없는 이기붕의 집이 성난 민심에 의해 불태워 진다(권력은 탄압하라고 준 것 아니지?)

이승만 경호 책임자였던 곽영주

경무대(=현 청와대) 앞 4.19 시위대에 발포 명령죄로 사형

사형 후 사망 여부 확인 위해 끌어올려져 검진받는 중

곽영주는 정치깡패 이정재와 의형제를 맺어 국민을 억압하다 둘 다 사형 당함

4.19정치깡패 이정재의 법정 모습

4.19 정치깡패 유지광(얘는 사형은 면한 듯)

성난 민심에 의해 불태워진 이정재의 집

참고로 프랑스 시민혁명때 루이16세 부부는 단두대에 목이 잘려 참수되었다

'배고파서 못 살겠으니 우리에게 빵을 달라'고 절규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 않나?' 이 말은 역사를 바꾸는 핵폭탄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세계대전 당시에 프랑스가 나치독일에 4년여간 식민지가 되었는데

국민과 드골 대통령은 친나치 협력자들 99만명을 체포하여, 6,700 여명을 사형선고하고

이 중 760 여명을 사형집행했습니다

출처 : 속초 청초 인라인
글쓴이 : 延海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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