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북한

[스크랩] 금강산 민간인 피격에 대해 진중권 교수님이 올린 글

멋진 결혼을 하자 2008. 7. 12. 15:13

금강산 민간인 피격
 
진중권, 2008-07-11 22:51:10 (코멘트: 11개, 조회수: 321번)

MB가 사건의 발생을 인지하고도 국회에서는 대북 대화를 제의했다고 하네요. 이런 일이 터졌는데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가 잠잠한 게 재미있네요. 이 정도라면 인터넷의 수구좀비들이 아우성을 치고, 우익단체들은  길바닥으로 쏟아져 나와 가스통에 불 붙이며 데모할 사안인데 말이죠. 더 재미있는 것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태도입니다. 그런 불행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북 대화 제안을 한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나섰으니 말이죠. 

물론 남한의 군부대에도 "접그하면 발포함"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적혀 있지요. 북한과 같은 경직된 사회에서는 아마 더 살벌할 겁니다. 희생자가 군통제지역으로 들어간 게 사실이라면, 아마 그 북한군 병사는 규정대로 행동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한다 하더라도,  비무장 민간인의 뒤를 향해 총을 발사한 것은 과잉대응으로 보입니다. 그 상황에서 과연 발포가 유일한 선택이었을까요? 50 넘은 아주머니가 도망가면 얼마나 가겠다고.... 당의 논평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들어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정도는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항의가 아닐까요?

황당한 것은, 이런 현실적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미리 대책을 세우지 못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대측에서는 물론 구두로 위험을 경고했다고 하나, 그걸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가령 정말로 민간인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군사지역이라면, 그 길목에 철조망, 바리케이트, 경고판 등을 설치해 놓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산책을 하다가 어떻게 발포가 가능한 위험한 지역으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들어갈 수가 있었는지... 

MB가 이런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cool한 태도를 보인 데에는 이유가 있지요. 그 동안 전 정권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라 비난하다가, 결국 통미봉남의 덫에 걸려버렸습니다. 북한에 대해 강경발언을 쏟아놓다가 북미 사이에 이미 싱가포르 협정이 맺어진 사실을 알고 방문 중이던 미국에서 부랴부랴  남북연락사무소 개설이라는 획기적(?) 제안을 해야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최근에는 옥수수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북한게 멋지게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요. 

통미봉남에 걸릴 경우 6자회담에서 남한의 역할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이 경우, 지난 YS 정권 때처럼 협의는 남들이 다 하고 비용만 덤터기 쓰게 되지요. 요 몇 달 간 MB는 남북관계를 '실용'이 아니라 '이념'의 관점에서 접근하다가 큰 코를 다친 바 있습니다. 한 마디로 본전도 못 차리고 볍진이 되어 버린 거죠. 그래서 부랴부랴 6.15와 10.4를 인정하는 어법을 구사하며 북한에 구애를 할 수 밖에 없게 된 거죠. 그런데 하필 이때에 피격 사건이 터져 버린 겁니다. 

만약에 MB가 이제까지 늘 했던 대로 북한에 대해 강경대응을 할 경우, 그러잖아도 자신이 꽁꽁 얼려버린 남북관계는 영원히 경색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MB가 혈맹이라는 믿는 부시는 야속하게도 이 대북 강경책에 동참해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시는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북핵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매듭져야 하니까요. 그러니 MB에게는 다른 길이 안 보이는 거죠. 금강산에서 제 나라 국민이 피격을 당해도, 목소리 한번 크게 못 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게 합리적 태도이긴 합니다. 남북한 사이에 이런 돌발사태는 언제라도 터져나올 수 있고, 그럴 때마다 정색을 하고 강경대응을 했다가는 도대체 관계라는 것을 안정화시켜 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 그 때문에 MB가 통미봉남의 덫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유화적인 태도를,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진일보"(한겨레)한 것이라 평가하는, 평소에는 참으로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지는 거죠.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네요. 

제 생각에는, 아무리 궁지에 몰렸어도 제 나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진 정부라면, 저것보다는 어조를 좀 더 강하게 가져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 동안 강경한 어조르 쓸 데 없이 북한을 자극한  MB 정권의 원죄가, 그들의 강경한 보수색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런 문제에 대해 찍소리를 못하고 입을 다물게 하고 있는 거, 그게 현상황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이를 서해교전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우익의 태도와 한번 비교해 보세요. 

쇠고기 문제로 미국에게 봉이 되고, 독도 문제로 일본에게 봉되고, 한미동맹 문제로 중국에게 봉 되고, 그러다가 마침내 북한 앞에서까지 봉이 되어버리고 만 MB 정권의 탁월한 외교력에 경외심이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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