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남해안 초등학교의 반란,세계수학계가 놀라다

멋진 결혼을 하자 2008. 1. 27. 16:39
남해안 초등학교의 반란,세계수학계가 놀라다
광양제철초교, 8개국 6만명 참가한 수학대회 3연패


▲ 전남 광양제철초등학교 수학영재반의 수업모습. 왼쪽부터 곽창훈 교사, 홍검술, 서해민, 조영빈, 송승준 어린이/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기자


지구촌 8개국 영재 5만명이 참가해 ‘두뇌’를 겨루는 세계적 수학 대회 ‘2008 국제 청소년 수학경시대회’에서 전라남도 광양제철초등학교가 최우수 단체상을 수상했다. 2006년부터 3년 연속 거듭된 쾌거다.


지난 1월 11일 중국 톈진(天津) 난카이(南開) 대학에서 열렸던 이 대회는 ‘미분기하학의 대가’인 천성선(陳省身) 교수를 기리는 국제 대회. 올해 5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엔 예선을 거쳐 선발된 미국·캐나다·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독일·한국·중국의 초·중학생 5만6000명이 참가했다.

“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다”는 시골학교 어린이들이 3년 연속 세계무대를 휩쓴 비결은 무엇일까? ‘수학의 비결’을 찾아 전남 광양제철초등학교 3학년 서해민(10·대상), 홍검슬(10·금상)·송승준(10·금상)·황재진(12·금상)·조영빈(12·금상), 정홍규(12·동상) 어린이와 학부모, 학생들을 지도한 ‘수학영재반’ 곽창훈(39) 교사를 22일 만났다.



“선생님 그건 이렇게 푸는 거죠?” 곽창훈 교사가 연산의 법칙을 설명하며 ‘가우스의 원리’를 칠판에 적자 한 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나섰다. 대회 금상을 차지한 홍검슬 어린이였다.

“먼저 1하고 100을 더하면 101이 되잖아요. 그 다음에 2하고 99를 더하면 또 101이 되고, 3하고 98을 더해도 또 101이 되고….”
홍군이 분필을 쥐고 신이 난 듯 팔을 휘두르며 설명했다. “어, 그럼 101을 50번 곱하면 1부터 100까지 다 더한 값이 나오겠네?” 다른 학생이 홍 군의 말을 받아 설명을 이어갔다.


▲ '2008 국제청소년 수학경시대회'에서 최우수 단체상을 수상한 전남 광양제철초등학교 수학영재반

교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단지 도우미일 뿐입니다. 그게 교사의 역할이죠.” 곽 교사가 말했다. “학생들끼리 난상토론 하며 수업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겁니다. 공식을 외우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 이런 공식이 나오게 됐는지 그 원리만 설명해 주면 됩니다. 그 다음엔 학생들 스스로가 생각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곽 교사의 설명처럼 이 학교 수학영재반엔 정해진 ‘틀’이 없다. 숙제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수업 2시간 내내 한 문제만 풀기도 한다.

“학생들 모두 화장실도 안가고 3~4시간 동안 토론만 한 적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학생들이 정답보다도 더 쉬운 풀이법을 찾아냅니다. 그럴 땐 제가 깜짝 놀라곤 하죠.” 곽 교사는 “사설학원에선 문제를 빨리 푸는 법을 가르치지만 우리는 한두 문제라도 집중해서 풀도록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 학교 수학영재반은 왜 이렇게 독특한 수업방식을 갖게 된 것일까? 그 이면엔 곽 교사의 노력과 이 지역의 열악한 교육 여건이 있었다.

“1998년에 광양제철초등학교로 왔습니다. 사실 읍내라고 해봐야 그냥 작은 마을에 불과했어요. 당시엔 변변한 학원 하나 없었습니다.” 곽 교사는 “학부모 요청에 의해 영재반을 만들었지만 처음엔 마땅한 교재도 노하우도 없었다”고 말했다.

광양제철초등학교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초등학교다. ‘포스코’라고 하면 넥타이 매고 일하는 석·박사급 연구원을 떠올리겠지만 광양제철소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부모의 90% 가량이 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일반 사원이다.

곽 교사의 고민도 거기에 있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집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기 어려운 데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주변 학원을 찾기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해답은 수학의 원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원리만 깨닫게 되면 나머지는 술술 풀 수 있으니까요.”

곽 교사는 “한 시간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3~4시간씩 끙끙거리며 한 문제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진주교대 대학원 수학교육과에 진학한 것이 2004년. “수학의 원리를 보다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였다.

곽 교사와 광양제철초등학교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학년별로 20명씩 구성된 이 학교 수학영재반이 ‘국제 청소년 수학경시대회’에서 최우수 단체상을 수상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허허, 솔직히 요즘엔 강남 부럽지 않습니다. ‘수학 명문’이라고 소문이 나다 보니까 주변 공립학교는 물론 서울에서도 ‘수학영재반에 들어가고 싶다’고 문의가 들어옵니다. 우리 학교는 포스코 광양제철 근로자 자녀로 입학이 제한돼 있는데 말이죠.” 김논쇠(48) 연구부장이 말했다.

금상을 차지한 송승준군의 어머니 이수진(35)씨는 “우리 아이가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승준이가 7살 때 주의력 결핍 판정을 받았거든요”라며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야단도 많이 맞았고 약물 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랬던 승준이가 수학반에 들어가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했어요. 집중력이 높아졌고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서 상까지 받아왔잖아요. 정말….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수진씨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거듭 말했다.

금상을 받은 서해민군의 어머니 김명숙(38)씨도 학교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을 갖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숙제는 꼭 하라고 시킵니다. 선생님께서 시키신 거니까요. 그리고 한 문제를 오래 푼다고 혼내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다 이해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합니다.”

광양제철초등학교 수학반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회초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수학반엔 회초리보다 무서운 것이 “내일부터 수학반에 나오지 말라”는 말이다.

송승준군은 “아이들끼리 서로 가르쳐주고 토론하는 게 재밌다”며 “2학년 때 수학반에 떨어졌을 땐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다시 수학반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금상을 받은 3학년 조영빈군은 “예전엔 수학을 싫어했었다”며 “수학반에 들어온 뒤 수학은 머리 아픈 것이란 생각을 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서해민군의 어머니 김명숙씨는 “강남 사교육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광양제철초등학교가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



광양 = 심선혜 기자 fresh@chosun.com
입력 : 2008.01.25 19:31 / 수정 : 2008.01.27 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