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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 검색& 오마이 뉴스 (꼬마민주당, 이기택)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이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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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李基澤, 1937년 7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편집] 생애
1937년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부산상고를 거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포항에서 태어났으나 학창시절 대부분과 정치경력은 부산에서 보냈다. 1960년 고려대 학생위원장으로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해 4.19의 도화선을 당겼다. 이후 젊은 나이에 정계입문을 하여 1961년 민주청년회 경남위원장을 역임하고 1967년 신민당 소속의 전국구로 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부산 동래구로 지역구를 옮겨 8·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까지 오르는 중진의 반열에 올랐다. 김영삼, 김대중의 양김씨와 이철승과 같은 거물 틈새에서 당내에 자신의 계보까지 조직할 정도였다.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규제에 묶여 제11대 국회에서는 출마하지 못했지만 규제가 풀리자 1985년 12대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때 정치규제에 묶여 일선에 나설수 없었던 양김씨를 대신했지만 실권이 별로 없던 이민우 신민당 총재 아래에서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1987년 신민당이 내세운 직선제와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내세운 내각제 사이에서 개헌논의에 진척이 없어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자,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지면 내각제 개헌도 무방하다던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둘러싸고 야당내에 갈등이 증폭되었다. 그리하여 이민우를 비롯한 신민당 내의 대여타협파와 결별하기 위해 양김씨가 자신의 계파의원들을 모두 신민당에서 탈당시켜 새로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때 이기택은 소속 계보 의원들과 함께 신민당을 탈당하였지만 통일민주당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이후 전두환이 4.13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여 15일간 단식하였다. 6월 항쟁이후, 여당이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부총재를 역임하고 다시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1990년 3당합당시 한동안 관망하다가 결국 참여를 거부, 김영삼과 결별하고 함께 삼당합당을 거부한 노무현, 무소속 의원인 홍사덕, 이철등과 함께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다음해 개헌후 처음 벌어졌던 기초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김대중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서 "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함께 공동대표가 되어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해운대를 떠나 전국구로 당선되었다.
1992년 김대중이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하자, 일약 야당총수가 되었다. 1993-1994년에는 제1야당의 총수로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당내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동교동계와 번번히 신경전을 벌이며 주도권 다툼을 하였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둘러싸고 동교동계와 잦은 충돌끝에 결국 되돌아 올수 없는 강을 건넜다. 민주당은 여당을 밀어내고 서울시장을 차지하는등 지방선거에서는 사실상 승리하였지만, 이미 이기택을 배제하기로 마음먹은 김대중은 동교동계 의원 전원을 탈당시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해운대구에 출마하였지만 낙선하고, 이어 1997년 고향 포항의 보궐선거에서도 출마하지만 낙선하였다.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서울시장이었던 조순을 대통령후보로 영입하였지만, 소수정당의 한계를 느낀 조순이 신한국당의 이회창과 연합하여 한나라당으로 합당하면서 이에 참여하였다. 불운하게도 이회창이 대통령선거에 패하여 이기택은 또다시 야당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에 대한 중진급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이회창은 많은 중진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이때 공천에서 탈락한 김윤환, 김광일, 그리고 재야인사인 장기표와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부산 연제구에 다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2년 부산상고 후배이자, 과거에 한솥밥을 먹었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 대선 유세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면서 [1] 이명박을 지지하였다. 여기까지가 이기택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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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노무현 발언은 시위 중단 의미 아냐”
데일리안 | 기사입력 2008.06.09 15:50
안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YTN 라디오 '강성옥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현장에 있던 제 입장에서 봤을 때는 촛불시위를 통해서 국민의 뜻을 이 정부에 알리고 검역주권이나 식탁 위 안전이나 주권자로서 국민의 권위와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시위의 정신을 중단하라거나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안 전 위원장은 "우리가 청와대로 가자는 게 국민들이 걱정하는 문제를 빨리 직시해달라는 거지, 청와대를 점령하자는 뜻은 아니었다"며 "현실적으로 많은 시위자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 취임 100일을 전후해 참여정부를 다시 평가해보자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지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분들이 생각하게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의 추락 현상에 대해서 지난 참여정부가 제대로 했던 것이라고 얘기하기에는 지금 현실이 너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안 전 위원장은 또 "이명박 정부가 있는 그대로 현실을 봤으면 좋겠다"며, "배후가 있다거나 배후 조종 세력이 있다거나 이런 것을 과거의 이념적 대립으로 불순 세력이 있다거나 하는, 현실을 안 보고 과거의 20세기 낡은 시각으로 보면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현 정권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참여정부 때도 참여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많은 분들이 심한 말을 했다. 그럴 때 참여정부가 그 뒤에 무슨 배후 세력이 있다고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한다거나 혹은 광장에 나와 있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여론을 그 뒤에 불순한 사람이 있다고 꼬아서 보지는 않았다"고 현 정부와 참여정부는 그 시각이 다름을 주장했다.
또한 '일단 원칙을 정하면 여론과 관계없이 앞만 보고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노명박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진행자의 말에 대해, 안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뭘 하겠다고 해놓고 뒤집는 게 한둘이냐? 정책 멋있게 걸어 놓고 하다가 중간 중간에 다 그만두는 것"이라며, "참여정부는 여론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정책적 기조를 유지했다. 일관성이나 발언의 책임성으로 보나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한편 '친노 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문제에 대해서 안 전 위원장은 "역사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같이했던 분들, 또 참여정부의 정신과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는 분들을 '친노'라고 표현하실 것"이라면서 "친노라고 했던 분들이 그 자체로 별도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거나 친노라고 표현했던 분들만이 정치 단결, 정당과 정치 질서 안에서 분파적인 활동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잘못된 거라고 본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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