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스크랩] 꼬마민주당 검색해다가 나온 안희정 오마이 인터뷰 올림 검색어 꼬마민주당 ,이기택,

멋진 결혼을 하자 2008. 6. 11. 13:19

"김대중-노무현이 통합민주당의 정통성이다"
[인터뷰] 최고위원 출사표 던진 안희정 전 참여포럼 집행위원장
황방열 (hby) 권우성 (kws21)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업자'라고 부른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
ⓒ 권우성
안희정

 

2003년 대검 중수부의 불법대선자금 사건 수사과정에서 안희정씨가  '노무현 캠프'의 자금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구속돼 있을 때다. 

 

그의 수사를 맡고 있던  한 고참간부가 담배 한 대 나눠피는 편한 자리에서 안씨에 대해 한 말이다.  "참 웃기는 자다. 노무현 대통령을 자신들(참모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한다. 그래서 운영자금 마련도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노 대통령은 행복한 사람이다." 숱하게 봐온 다른 '보좌관-의원'들처럼 '꼬붕-오야붕'관계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통합민주당 전당대회의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겠다는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의 '출마의 변'을 듣기 위해, 지난 16일  마포구 공덕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같은 말을 했다. "노 대통령을 만나기 이전부터 나는 민주화운동의 정치세력이었다.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출세하자는 게 아니라, 정당정치의 완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완성하자는 것이 내 목표다. 새로운 정당정치를 통해, '100년 가는 정당'이라는 꿈을 이뤄내고 싶다."

 

"민주당 정체성 바로잡기 위해 나간다"

 

그는 이런 생각아래 "당의 적자, 젊은 세대의 적자로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바로잡기 위해 출마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최근의 민주당정체성 논쟁에 대해 "당사에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민주당의 위기의 본질"이라며 "정체성 논쟁을 관념적으로 하지 말고, 두 분 사진을 걸어놓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 정체성을 찾는 시작이고, "역사의 정통성이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두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지금의 민주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옛민주당 당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결국 그의 말은 '민주당이 노무현에 대한 호부호형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일 수 있다. 그는 "두 대통령을 우리의 정통성으로 삼자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른 취사선택이 아니라 온전히 다 안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의 역사를 다 공백으로 만들고, 현실과 미래를 말할 수 있나. 왜 '통합'민주당인가, 단결하자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민주세력의 최상의 메뉴를 내왔는데, 이것을 부정하고 어떻게 지지세력을 모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동영, 김근태 전 장관의 '참여정부 실패'주장과 '민주세력 무능론 인정'이 손학규 대표로 연결되면서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10년'주장에 대항하지 못했고, 그 결과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했다는 시각이다.

 

"이미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걸었던 길이 제3의 길"

 

이는 손학규 대표의 '제3의 길'에 대한 비판으로 직결된다. 그는 "이미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온 길이 ' 제3의 길'이며, 민주정부 10년이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구호를 만들고 있는데, 참으로 갑갑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주장은 확신에 차 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공천심사에서 배제됐고, 당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도 꺼려한다. 그는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만 생각하는데, 나도 당 생활 2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가져왔다. 제가 이 당에서 한번 커 보겠다고 하면 박수칠 분들 많다.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를 만난 건물은 그가 1988년 12월에 처음으로 정당생활을 시작한 통일민주당 당사였다.  1990년 3당 합당 때, 당시 노무현 의원이 반대발언을 하기 위해 오른팔을 번쩍 드는 사진의 배경도 이 건물 1층에 있던 회의실이었다고 한다. 김덕룡 의원 밑에 있던 그도 3당합당 합류를 거부해 이기택, 이철, 노무현 등이 남은 꼬마민주당의 당직자가 됐다. 그 몇 년 뒤 노무현 대통령과 결합해  이후 정치행보를 같이 해왔다.

 

노 대통령의 퇴임 이후 독자행보를 시작한 그가 어떤 결과를 얻느냐는 것도,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의 관심거리 중의 하나가 됐다.

 

 

다음은 인터뷰 문답.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
ⓒ 권우성
안희정

- 지난 총선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개혁세력의 명백한 후퇴이자, 패배다. 우리 지지자들을 결집시키지 못한 것이 패배 원인이다."

 

-정치권의 386세력은 평가를 받은 것 아닌가.

"동의할 수 없다. 국민은 그들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게 아니다. 민주당이 국민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이다. 386세력이 참여정부를 그리고 지금의 민주당을 주도했던 것도 아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386이 떠받들었고, 386세대가 심판받았다고 하는 것은 일부 언론권력의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김영상 정부는 PK정권', '김대중 정부는 호남정권', '노무현 정권은 386정권'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을 소수화시키는 언론권력의 착시효과다. "

 

-2002년 불법대선자금 사건이 문제가 돼 결국 공천에서 배제됐었는데.

"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심사대상에서조차도 배제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옳지 않다. 세부 항목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데 법조항 따진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속한 조직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소속으로 나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천을 못 받으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젊은 사람으로서는 그런 '상식'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웃음)

 

- 이명박 정부의 80일은 어떻게 평가하나.

"지지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초반점수는 실패작이다.  그 동안 시장만능주의 밖에 없었다. 민영화, 감세, 작은 정부를 아무리 외쳐도 영국 같은 데는 우리보다 큰 정부다. 지금은 다이어트 할 것도 없는 사람이 다이어트하는 것이다. 시장주의 원칙이라도 지켜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내마음 대로'다. 짝퉁 시장주의자가 박정희식 권위주의를 갖고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미사대주의가 결합돼 있다."

 

"역사의 정통성이 정체성"

 

-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에 맞서서 잘 싸우고 있다고 평가하나.

"대안세력으로서, 수권정당으로서 인정받아야 하는데, 지금 체제로는 어렵다. 당의 정체성이 이래서는 안된다. 여러 선배들이 여러 진단 내리는데, 저는 정당정치 후배로서 원망스럽다.

 

당사에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한 장을 볼수 없다. 이게 위기의 본질이다. 정체성 논쟁을 관념적으로 하지 말고, 두 분 사진을 걸어놓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두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이 지금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겠나. 역사의 정통성이 정체성이다. 한나라당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에 비해 우리는  자랑스런 대통령을 갖고 있지 않나.

 

3당 야합때는 당직자로 반대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작은 일을 한 '20년 정당인'으로서 하는 말이다.  민주정부 10년을 만든 국민들이 지금은 표를 줄 데가 없다."

 

-옛민주당 당사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통합민주당은 노 대통령 사진만 안 거는 것 아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되찾은 10년'이라고 했다. 후손들은 영광도 상처도 다 이어받아야 할 책임도 있다. 물론 거기에 함몰하고 안주하자는 게 아니라, 긍지를 이어받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라를 거덜 냈나, 팔아먹었나. 선배정치인들에게 '역사속에서 단결하자'고 호소하고 싶다. 이게 민주당의 정체성이고 정통성이고, 민주당을 단결시키는 첫걸음이다."

 

-'민주당이 노 대통령을 인정하라'는 말로 들린다.

"두 대통령을 이어받아 그것을 온전하게 우리의 정통성으로 삼자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른 취사선택이 아니라 온전히 다 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역사를 다 공백으로 만들고, 현실과 미래를 말할 수 있나. 왜 '통합'민주당인가, 단결하자는 것 아닌가."

 

- 왜 최고위원 선거에 나섰나.

"민주당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당의 정통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이전 두 정부를 지지했던 국민들을 모아 낼 수 있고, 야당-민주화 운동 30년과 민주정부 10년의 역사를 모두 우리의 긍지로 삼아서 내일을 계획할 수 있다.  또 정통성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저도 그 일원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실망한 많은 시민들과 우리 지지자들에게 제가 희망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로 공정하고 투명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세분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호남에 갇힌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1인지배정치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떤 당을 만들 것이냐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것은 공정하고 투명한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흔쾌하게 반기지 않는 당에서, 공천에서도 배제됐던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사가 최고위원에 나서는 것인데.

"저를 노 대통령의 측근으로만 보는 분들 많은데, 저도 당 생활한지 20년 됐다. 저도 수많은 사람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가져왔다. 이 당의 적자로서, 젊은 세대의 적자로서 제가 이 당에서 한번 커 보겠다고 하면 박수칠 분들 많다.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새로운 정당정치를 통해, '100년 가는 정당'이라는 꿈을 이뤄내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기 전부터 저는  민주화운동의 정치세력이었다.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출세하자는 게 아니라, 정당정치의 완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완성하자는 것이  제 목표다. "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
ⓒ 권우성
안희정

 

"유시민은 좌절했고, 5년동안 놀면서 힘비축한 나는 더 두드려 보겠다는 것"

 

- 유시민 의원은 총선 전에 "통합민주당에 정당성과 정통성이 있느냐"고 했었다. 민주당을 민주개혁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동의하나.

"지난 10년을 부정한 세력에 대한 당연한 비판이다. 저는 그것을 어떻게 고칠 것이냐 하는 고민에서 출마하는 것이다. 역사의 정통성을 살리고,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그 노력하는 길에서 유 의원과 약간의 방법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생각은 비슷한데, 방법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뭔가.

"유 의원은 민주당에서 좌절했고, 저는 5년동안 놀았기 때문에 그동안 비축한 힘으로 더 두드려보겠다는 것이다. (웃음)  유 의원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2002년 대선때는 '노무현 지킴이'로 개혁당을 만들었고, 열린우리당에 와서는 당의 개혁과 혁신에 기여하려다가 계속 좌절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상도동-동교동’틀에서 활동했던 우리는 어떻겠나. 더 위로하면서 힘을 모아가자는 것이다.

 

저는 정당인이다. 정당인으로서 현재 민주당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냐 하는 것은 제가 시도하고 도전할 일이다. 그렇게 해서 또 후배정당인들이 자꾸 도전하면서 당이 바뀌는 것 아닌가. 유진산의 당이 '김영삼-김대중의 40대 기수론'으로 바뀌듯이 말이다."

 

-민주당의 진로에 대해 손학규 대표는 '제3의 길', 천정배 의원은 진보개혁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미 10년이 있었다. 10부작이 있었다. 그것을 다 보고 11부작을 짜야 하는 것 아닌가. 과거와 연결되는 논의를 했으면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시장경제 동시발전을 계승한 것이 노 대통령의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동반성장론'이다. 또 노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의 계승발전이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정치인 중에 가장 똑똑하다는 김대중 대통령과 가장 성실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동안  만들어온 것을 갖고 있다. .

 

지난 두 번의 정부에서 민주세력의 최선의 메뉴를 내온 것인데, 지금 '제3의길' 이런 얘기를 하면 국민들이 못 알아 듣는다. 

 

지금 우리 당에 수도권규제 완화, 종부세 인하에 적절히 타협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8년의 민주주의자라면, 이런 전선들에서 비타협적으로 싸워야 한다. 우리 당의 후보가 강남에 출마해서 한나라당과 똑같이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면 어떻게 하겠나. 이 세금이 자기 고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런 것에 대해 당지도부도, 후보도 아무 말 못한다.

 

정체성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부터 살펴 보는 것이다. 그 길의 적자로서 안희정의 도전의 의미가 있다.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의 한 측근'으로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참모들을 '나를위해 충성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역사에 충성하는 사람들'이라 했다. 그래서 '동업자'라고 하는 것이다."

 

 "국정원의 검색이 아이들 문자질을 못 당한다"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
ⓒ 권우성
안희정

-그런 시각에서 보면 손학규 대표는 다른 길을 걷다가 온 것인데.

"그래서 손 대표가 많은 고생을 하는 것이다. 우리 세력의 대선후보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이미 말했었다.  그 동안 고생도 많이 하셨고, 총선도 이끌어왔기 때문에 각박하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이명박정부는 ABR(Anything But Roh-노무현 정책만 아니면 모두)정책이다. 수도권규제철폐, 복지예산 삭감 등 성장일변도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민주정부 10년이 실패했다는 사람들이 말하기 갑갑하니까 새로운 구호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게 더 갑갑한 일이다. 이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걸었던 길이 제3의 길이었다."

 

-귀향한 노 전 대통령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왜 그렇다고 보나.

"지난 11일에 봉하마을에 갔었다. 그날까지 방문객이 32만명이라고 하더라. 대통령께서 그동안 많이 고생하지 않으셨나. 자기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고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쏠린다. 방문객들이 '그 동안 욕을 많이 해서 미안하다'고 한단다. 현재 이명박 정부와 비교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노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재평가라고 본다면, 총선결과를 설명하기 어렵지 않나.

"노 대통령 재임중에는 잘못한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임기 끝내고 뒤돌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전 대통령의 '측근인사'로서, 현 대통령의 핵심측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대와 국민의 역량을 믿고 계획을 잡으라고 말하고 싶다. 국정원과 감사원을 아무리 풀어놔도 시민들의 카메라가 더 빠르다. 국정원의 검색이 아이들의 문자질을 못당한다. 이런 우리 사회의 역량을, 대통령의 통치력으로 계획해서 끌고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대통령의 통치력에도 집권세력의 정치력에도 도움이 안된다. 통치력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조심해야 한다."

2008.05.19 09:54 오마이 뉴스

 

출처; 다음 검색& 오마이 뉴스  (꼬마민주당, 이기택)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이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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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택(李基澤, 1937년 7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편집] 생애

1937년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부산상고를 거쳐,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포항에서 태어났으나 학창시절 대부분과 정치경력은 부산에서 보냈다. 1960년 고려대 학생위원장으로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해 4.19의 도화선을 당겼다. 이후 젊은 나이에 정계입문을 하여 1961년 민주청년회 경남위원장을 역임하고 1967년 신민당 소속의 전국구로 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부산 동래구로 지역구를 옮겨 8·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까지 오르는 중진의 반열에 올랐다. 김영삼, 김대중의 양김씨와 이철승과 같은 거물 틈새에서 당내에 자신의 계보까지 조직할 정도였다.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규제에 묶여 제11대 국회에서는 출마하지 못했지만 규제가 풀리자 1985년 12대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때 정치규제에 묶여 일선에 나설수 없었던 양김씨를 대신했지만 실권이 별로 없던 이민우 신민당 총재 아래에서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1987년 신민당이 내세운 직선제와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내세운 내각제 사이에서 개헌논의에 진척이 없어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자,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지면 내각제 개헌도 무방하다던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둘러싸고 야당내에 갈등이 증폭되었다. 그리하여 이민우를 비롯한 신민당 내의 대여타협파와 결별하기 위해 양김씨가 자신의 계파의원들을 모두 신민당에서 탈당시켜 새로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이때 이기택은 소속 계보 의원들과 함께 신민당을 탈당하였지만 통일민주당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이후 전두환이 4.13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항의하여 15일간 단식하였다. 6월 항쟁이후, 여당이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여 부총재를 역임하고 다시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었다.

1990년 3당합당시 한동안 관망하다가 결국 참여를 거부, 김영삼과 결별하고 함께 삼당합당을 거부한 노무현, 무소속 의원인 홍사덕, 이철등과 함께 민주당(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다음해 개헌후 처음 벌어졌던 기초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 김대중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서 "민주당"을 창당하고 김대중과 함께 공동대표가 되어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해운대를 떠나 전국구로 당선되었다.

1992년 김대중이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하자, 일약 야당총수가 되었다. 1993-1994년에는 제1야당의 총수로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당내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동교동계와 번번히 신경전을 벌이며 주도권 다툼을 하였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둘러싸고 동교동계와 잦은 충돌끝에 결국 되돌아 올수 없는 강을 건넜다. 민주당은 여당을 밀어내고 서울시장을 차지하는등 지방선거에서는 사실상 승리하였지만, 이미 이기택을 배제하기로 마음먹은 김대중은 동교동계 의원 전원을 탈당시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해운대구에 출마하였지만 낙선하고, 이어 1997년 고향 포항의 보궐선거에서도 출마하지만 낙선하였다.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서울시장이었던 조순을 대통령후보로 영입하였지만, 소수정당의 한계를 느낀 조순이 신한국당의 이회창과 연합하여 한나라당으로 합당하면서 이에 참여하였다. 불운하게도 이회창이 대통령선거에 패하여 이기택은 또다시 야당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에 대한 중진급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이회창은 많은 중진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이때 공천에서 탈락한 김윤환, 김광일, 그리고 재야인사인 장기표와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부산 연제구에 다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2년 부산상고 후배이자, 과거에 한솥밥을 먹었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면서 새천년민주당에 입당, 대선 유세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년에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면서 [1] 이명박을 지지하였다. 여기까지가 이기택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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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노무현 발언은 시위 중단 의미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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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기사입력 2008.06.09 15:50


try{var rand = Math.random().toString(); var ordval = rand.substring(2,rand.length); var clintAgent = navigator.userAgent; document.writeln("");}catch(e){}

[데일리안 유성호 기자]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7일 경남 양산에서 열린 노사모 총회에서 "쇠고기 협상이 아무리 잘못됐다 하더라도 정권 퇴진 요구는 우리 헌정질서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 시도)는 별 소득 없을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다"고 말해 일부 시민사회진영의 반발을 낳고 있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전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이 9일 이를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안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YTN 라디오 '강성옥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현장에 있던 제 입장에서 봤을 때는 촛불시위를 통해서 국민의 뜻을 이 정부에 알리고 검역주권이나 식탁 위 안전이나 주권자로서 국민의 권위와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시위의 정신을 중단하라거나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안 전 위원장은 "우리가 청와대로 가자는 게 국민들이 걱정하는 문제를 빨리 직시해달라는 거지, 청와대를 점령하자는 뜻은 아니었다"며 "현실적으로 많은 시위자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 취임 100일을 전후해 참여정부를 다시 평가해보자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지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분들이 생각하게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지금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의 추락 현상에 대해서 지난 참여정부가 제대로 했던 것이라고 얘기하기에는 지금 현실이 너무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안 전 위원장은 또 "이명박 정부가 있는 그대로 현실을 봤으면 좋겠다"며, "배후가 있다거나 배후 조종 세력이 있다거나 이런 것을 과거의 이념적 대립으로 불순 세력이 있다거나 하는, 현실을 안 보고 과거의 20세기 낡은 시각으로 보면 현실을 그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현 정권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참여정부 때도 참여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많은 분들이 심한 말을 했다. 그럴 때 참여정부가 그 뒤에 무슨 배후 세력이 있다고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한다거나 혹은 광장에 나와 있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여론을 그 뒤에 불순한 사람이 있다고 꼬아서 보지는 않았다"고 현 정부와 참여정부는 그 시각이 다름을 주장했다.

또한 '일단 원칙을 정하면 여론과 관계없이 앞만 보고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노명박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진행자의 말에 대해, 안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뭘 하겠다고 해놓고 뒤집는 게 한둘이냐? 정책 멋있게 걸어 놓고 하다가 중간 중간에 다 그만두는 것"이라며, "참여정부는 여론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정책적 기조를 유지했다. 일관성이나 발언의 책임성으로 보나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일축했다.

한편 '친노 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문제에 대해서 안 전 위원장은 "역사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같이했던 분들, 또 참여정부의 정신과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는 분들을 '친노'라고 표현하실 것"이라면서 "친노라고 했던 분들이 그 자체로 별도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거나 친노라고 표현했던 분들만이 정치 단결, 정당과 정치 질서 안에서 분파적인 활동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잘못된 거라고 본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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