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쌤(선생님)은 교회다니시니까 미국 쇠고기 수입 찬성하시겠네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중3 여자아이가 대뜸 묻는다.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내심 궁금한 마음에 "그게 무슨 말이야?"하고 되물으니. 패션 디자이너가 꿈인 그 평범한 아이는 대답하길,
"'훌륭하신 목사님들'이나 '믿음 좋은 분들'은 미국 쇠고기 수입에 다 찬성하시잖아요"라며 "저는요, 교회는 다니지만 믿음이 약해서 반대하고 있어요"하며 진지하게 덧붙인다.
이른바 'MB도우미'로 통하는 영향력 있는 목사님들의 다채로운 도움 퍼레이드는 정말 효과가 있었나 보다. 평범한 중학생 아이에게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 믿는 것이 참믿음이라 고민하게 만들었으니까.
이미 광우병 걸린 소에 대한 위험성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물론 아니라고 말하는 과학자도 소수 있지만-, 생명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대다수 전문가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대책을 강구해야할 텐데. 논점을 흐려 사탄의 계략 운운하는 성직자들의 목소리가 그 아이를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 용어가 너무 과격하다라는 비판 ::
'그래도 대통령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닌가?'하는 비판들이 교회 안에, 혹은 기독교인 사이에 퍼져 있다. '용량2MB'를 비롯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조롱의 말들. 그러나 이는 아주 유명한 사회행동 전략 중에 하나다. 특히 10대와 같은 힘없는 집단이 대기업이나 정부당국과 같은 막강한 힘을 지닌 집단에 의해 캠페인을 벌일 때 사용한다.
어느 날 갑자기 용어가 과격해 졌을까? 아니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만큼, 딱 그 만큼씩 강도가 세졌다.
예수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않고, 겉치레 율법에 얽매인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매우 과격하게 말씀하셨다. 촛불 시위와 거리행진의 주체들은 '힘'이 없어서, 그냥 거리에 나오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의 진심어린 목소리는 듣지 않은 채, 국익이니 한미동맹의 명분으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체면'을 차리는 자들은 과연 예수의 쓴 소리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왜 불법 시위를 하는가? ::
'정법적으로 하면 될 것을, 왜 불법 시위를 벌이냐?'는 비판은 시위현장에서도 자주 벌어지는 논쟁이다. 과거 촛불집회나 시위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주관 단체가 있으면 가이드 라인을 확실히 정해줬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너도 나도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자신의 성향에 맞는 이들과 함께 흩어져 자유롭게 움직인다.
지난 28일 시위행진 도중 전경들에게 붙잡혀 구타를 당한 도서출판 꿈꾸는터의 백현모 대표는 "인도로 다녔지만, 전경들이 차도로 사람들을 밀쳐내며 한 사람씩 포위하고 목을 졸라 넘어뜨리고 군화발로 밟기 시작했다"며 본의 아니게 불법시위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옛날처럼 무기를 들지도, 화염병을 들고 있지도 않은 그냥 걷고만 있는 이들을 왜 또 옛날처럼 군화발로 저지하려는 걸까. 집회에 모인 국민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촛불 안에 밝히는 자신의 '뜻'이다. 정법이냐 불법이냐도 중요하지만, 그 '뜻'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시민들. © 뉴스파워 | |
:: 미국 쇠고기, 그 이상의 문제 ::
프랑스도 일부 지역의 빵 값 폭등으로 인해 촉발된 시위가 부정과 부패를 몰아내는 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미국 쇠고기 수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는 동안, 재협상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현 정부의 움직임 때문에, 국민들은 점점 '신뢰'를 잃어갔다. 하늘로부터 직통계시를 받는 것인지, 국민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구호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장로 대통령이라고 무한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과연 기독교의 역할일까?
기독교를 믿는 일부 기득권층은 역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해야 한다.
예로부터 기득권층은 백성들의 삶을 팔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이득을 취해 왔다.
종교는 그것을 비판하면서 제 역할을 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함께 타락하여 그것을 정당화해주다가 나라를 망쳤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밟히듯이, 종교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면 나라를 망친다.
"쌤! 쌤(선생님)은 교회다니시니까 미국 쇠고기 수입 찬성하시겠네요?"
"'훌륭하신 목사님들'이나 '믿음 좋은 분들'은 미국 쇠고기 수입에 다 찬성하시잖아요"
"저는요, 교회는 다니지만 믿음이 약해서 반대하고 있어요"
나를 '믿음 좋은 사람'으로 봐준 것에 대해서는 고마웠지만, 그것이 왜 '미국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했는지 아직도 분한 마음이 든다. '미국 쇠고기 수입=믿음 좋은 사람'이라는 등식은 너무 억울하지만, 그 어린 아이와 같이 '믿음 약한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야지, 마음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