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보

[스크랩] FTA 체결 후 12년, 멕시코 사회의 실상

멋진 결혼을 하자 2007. 4. 3. 13:34

FTA 체결 후 12년, 멕시코 사회의 실상

[프레시안 채은하/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본협상 개시에 맞춰 KBS가 12년 전에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의 오늘날 현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KBS에 따르면 4일 저녁 8시에 KBS1 텔레비전 방송의 'KBS 스페셜'에서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 42개 국가와 11개의 FTA를 맺은 멕시코는 이들 나라 거의 모두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멕시코는 지난 2003년에 일본과 맺은 FTA를 끝으로 앞으로 당분간은 어느 나라와도 FTA를 맺지 않겠다는 이른바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도 했다.
  
  멕시코 안에서 살아가는 멕시코 국민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강택 KBS 피디가 18일간 멕시코 전역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번에 방영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전한다.
  
  영화감독 까를로스 까레라스
  
  까를로스 까레라스는 영화감독 경력 17년차로, 이강택 피디의 표현에 따르면 '천재'다. 그동안 4년에 하나씩 영화를 4편 만들었는데 만드는 족족 상을 타 골든 글로브 상과 오스카상, 황금종려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는 지금 영화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의 영화산업의 인프라가 다 무너졌기 때문에 영화감독이라는 이름조차 유명무실할 지경이다. 현재 까를로스 감독은 먹고살기 위해 광고제작을 하고 있다.
  
  그는 이강택 피디에게 "1년에 내 영화 두 편만 만들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미국 할리우드에서 연출 제의가 들어오지만 영화가 나라의 정체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거부하고 있다. 이강택 피디는 "천재가 썩고 있는 셈"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멕시코의 영화산업은 초토화된 지 오래다. 이강택 피디에 따르면 현재 멕시코에는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삼아 먹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텔레비전 방송사 등에서 프리랜서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잇고 있다.
  
  2003년에 영화계 인사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나서서 영화관람료 중 1페소씩을 걷어 국산영화 지원기금으로 쓰자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의 압력으로 멕시코 정부가 직접 개입해 무효화시킨 것이다.
  
  과달까사르 마을 주민들
  
▲ 미국기업 메탈클래드의 멕시코 내 폐기물 처리장. ⓒ KBS 홍보 동영상

  과달까사르는 멕시코의 동북지역의 산 루이스 포토시 주에 속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분지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1994년 산 건너에 메탈클래드라는 미국의 폐기물처리 업체가 들어왔다. 미국에서 석면 처리 사업을 하던 메탈클래드는 미국의 각종 산업폐기물을 이곳에서 처리하는 사업을 벌였다.
  
  이 회사가 대규모 산업폐기물 매립을 시작하자 과달까사르 마을뿐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 암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과달까사르에서는 1993년 이후 암환자가 23명 발생했다. 척추가 갈라지거나 뇌가 없는 기형아가 태어나기도 했다. 이에 그린피스가 현지조사를 했고, 그 결과 지하수가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메탈클래드가 자리잡은 지역과 이곳의 지하수가 서로 통해 있었던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메탈클래드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압박에 못이긴 지방정부도 본래 희귀 동식물이 많던 이 지역을 상태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사업을 못하게 된 메탈클래드는 주정부에 뇌물을 주며 로비하는 등 지역정부를 압박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자 결국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1조를 들어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NAFTA 11조는 미국 기업들이 FTA를 체결한 상대방 국가의 공공정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의 NAFTA에서 처음 도입한 것으로 얼마 전 <프레시안>이 단독 입수해 보도한 우리 측의 한미 FTA 초안에도 이 조항이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메탈클래드는 이 조항에 따라 "주민의 반발로 사업을 못하게 됐다"며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멕시코 정부는 165억 원을 배상했다. 물론 과달까사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오염 피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사과도 없었다.
  
  이강택 피디는 "처음 NAFTA 협상에서 이 조항을 넣을 때에는 누구도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라며 "기업의 이윤을 위해 멕시코 사람들의 생존의 권리 따위는 사라져버린 것 아니냐"고 말했다.
  
  멕시코 거리를 가득 메운 노점상인들
  
▲ 대통령 궁 옆 길의 노점상들. ⓒ KBS 홍보동영상

  조금이라도 번화한 곳이라면 멕시코의 거의 모든 지역에는 노점상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거리에서 보는 것과 같이 띄엄띄엄 한두 개씩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양쪽에 두 줄로 쭉 들어차 있다.
  
  이강택 피디는 "노점상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NAFTA가 발효된 시점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FTA 체결 이후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와 농민 등이 모두 거리로 나서 가진 것을 내다파는 것이다.
  
  구직활동을 해보려 해도 남아있는 일자리도 없고, 멕시코에는 실업수당도 없다. 때문에 거리에서 신문과 껌을 팔거나 교차로에 차가 서면 달려들어 유리창을 닦아주고 돈을 버는 등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이들이 무리 지어 몰려다닐 만큼 많다.
  
  국경을 넘으려는 불법 이민자들
  
  멕시코의 심각한 실업문제는 바로 몰래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가는 불법 이민자들의 문제로 이어진다.
  
  전국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국경도시로 몰려든다. 이들은 이 도시에서 일단 일자리를 구하고, 그래도 먹고살수 없는 처지에 몰리면 그때는 죽음을 감수하고 국경을 넘는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은 그 길이가 3200킬로미터로 휴전선의 10배다. 그런데 그 중에는 국경이 장벽을 두고 불과 20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가까운 지역도 있다. 멕시코 쪽 장벽과 미국 쪽 장벽 두개를 넘어 월경하려는 이들이 엄청나게 많다. FTA를 체결한 이후 이러한 불법 이민에 성공한 멕시코인의 수는 1300만 명으루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경을 넘다가 죽는 이들도 숱하다. 미국 국경을 넘어가다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기온이 50도를 넘는 사막을 건너 가려다 탈수증으로 죽기도 한다.
  
▲ (왼쪽) 국경을 넘는 멕시코인들. (오른쪽) 또르티아 장벽이라 불리는 멕시코 국경에 늘어선 관들. 국경을 넘다 사망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 KBS 홍보 동영상

  멕시코 정부
  
  현재 정부가 한미 FTA를 통해 수출을 늘리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홍보하는 것처럼 멕시코 정부도 1994년 NAFTA 체결 당시에 이것이 멕시코를 캐나다와 같은 선진국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선전했다.
  
  멕시코 정부는 멕시코 내 모든 지역을 돌며 지역토론회도 열었고, FTA를 홍보하는 TV 광고까지 내보냈다. 정부가 이렇듯 공세적으로 홍보전략을 펼친 탓인지 당시에는 FTA 반대운동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협상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어 그 과정에서 국회 또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협상단은 국회비준 1주일전에 어마어마한 양의 문서를 국회에 가져다 주었고, 여당이던 제도혁명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국회는 별다른 검토도 없이 협정문을 비준했다.
  
  NAFTA에서 미국은 민간품목 14개에 대해 보조금을 인정받았지만 멕시코는 3개만 인정받는 등 그야말로 최악의 FTA가 체결됐다. 이강택 피디는 멕시코 주민들이 이 FTA를 두고 "미국 사람과 멕시코 사람이 협상한 것이 아니라 미국인과 미국인이 협상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협상 이후에도 정부는 멕시코 국민들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NAFTA 체결 당시 미국은 옥수수에 대해 15년 간 점차 관세인하 대상 물량을 늘리자고 해 협정에 반영했다. 그 이상으로 미국산 옥수수가 멕시코로 들어오면 멕시코 정부는 고율의 관세를 물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멕시코 내 식품가공업자들이 자기들에게도 낮은 관세가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묵인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던 것이다. 멕시코 농촌이 그로 인한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이다.
  
  "FTA는 거대한 사기극"
  
  이강택 피디는 "멕시코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FTA는 정부의 홍보와 달리 한국이나 멕시코를 선진국으로 이끌어 주는 수단이 결코 아니다"라면서 "FTA는 거대한 사기극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탈클래드의 소송 사건을 들어 "FTA는 미국과 한국의 자본 사이에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힌 하나의 수렁과 같아서 한 번 발을 대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돌아나올 수 없다"면서 "FTA는 곧 국민경제의 해체를 의미하며 더이상 그누구도 민중을 보호해줄 수 없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협상에 대해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할 만큼 우리에게 FTA가 당장 필요한 것인가? FTA가 없으면 우리는 당장 망할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FTA의 본질에서 한국과 멕시코가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시민사회는 FTA 체결 이후 멕시코 사회에서 극단의 양극화 협상이 나타나 소수만이 이득을 보고 나머지 대다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배제돼온 현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은하/기자

출처 : 베스트 드레서
글쓴이 : 최 성희 원글보기
메모 :